잡소리

'비난'에 관한 잡소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5. 2. 18:28

비난

 

인터넷을 서핑하다 난도질한 교복을 입고 밀가루 범벅이 되어 춤을 추는 여고생들의 동영상을 봤다. 그녀들은 훗날 그리워할 게 분명한, 하지만 당장은 지긋지긋한 학창시절에 마침표를 찍는 게 즐거워서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을 가다. 이 동영상 아래는 “저런 딸이 생길까 두렵다”는 비난의 리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우리는 교복을 찢거나, 밀가루를 얼굴에 처발랐거나, 춤추는 딸을 원하지 않는다? 원더걸스의 인기를 떠올리니, 일단 춤추는 건 죄악의 리스트에서 제외해야겠다. 그렇다면 졸업식 날 교복을 훼손하는 것 아니면 밀가루범벅이 되는 게 잘못이란 소리다.

 

자원을 낭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의식주의 세 요소 가운데 둘을 헛되이 소비한, 또는 재활용하지 않은 그녀들의 행동은 잘못이다. 하지만 비난의 요지가 자원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음식 낭비를 비난하려면 뷔페 레스토랑을 찾아 식탐이 이성을 앞서버린 이들 앞에서 난동을 벌이는 게 효과적일 것이고, 의류 낭비를 꾸짖으려면 입지도 않을 옷을 장롱에 차곡차곡 포개는 쇼핑중독자를 찾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녀들의 잘못은 스트레오 타입에서 벗어났다는 거다. 교복을 찢고, 얼굴을 허옇게 떡칠하고, 춤추는 모습이 학생의 전형성에 어울리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이질성에 대한 적대감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틀즈가 전 세계의 라디오 음파를 장악했을 때 우리는 장발 단속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고, 청춘남녀의 서로 다른 욕망이 미니스커트 위에서 처음 교차했을 때도 어르신들은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미친년 비난에 열중하셨다. 국제결혼이 국내 결혼의 1/8을 차지하는 데도 베트남이나 연변 처녀들에 대한 우리의 환영은 별로 뜨겁지 않다. 3D 업종을 도맡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처음 떠오르는 감정도 부정적이기 일쑤다. 그들의 죄는, 우리의 어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었던, 또는 젊은 혈기를 긴 모발로 뽑아냈던 아버지의 죄악과 동일하다. 하지만 이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죄인을 용서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총천연색 장발 사내가 미니스커트의 외국인 처녀가 마음껏 낄낄거리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출처 : MAXIM 2008년 4월호에서 가져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우리가 보는 가치관도 항상 변화한다.

지금 우리가 눈쌀을 찌뿌리는 것들은 곧 다른 세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덮어놓고 비난 일색으로 마주하는 것은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논리와 사고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개똥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 민국의 역사는 붕당 정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붕당 정치의 탁상공론이

21세기가 14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지없이

큰 사고 앞에서 서로의 비난으로 점철되어 있는 꼬락서니를 보니

뒤에 있는 세대들의 욕설이 귀에 들리는 듯 해 얼굴이 붉어지는 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제발 비난 보다는 합의와 이해 서로에 대한 배려를 하자

늙은이와 젊은이

경상도와 전라도

보수와 진보

 

양극단에서 비난을 하지말고

우리 화개장터와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

손잡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진지한 화해를 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