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바버라 앨런라이크 2012)
긍정의 배신에 이어 바버라 앨런라이크가 노동의 배신을 출간했다.
원래 노동의 배신은 2000년에 발간한 책이라 긍정의 배신보다 한참 앞서 출간한 책이지만
국내에는 거꾸로 발행되었다.
바버라가 이번엔 저소득층 블루칼라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직접 그들의 노동의 삶에 뛰어들었다.
바버리는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지금은 전문 작가로
여러 가지 논픽션을 저술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금전적인 부분에서 어려움도 없으며
정기적인 운동과 메디케어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
중산층이다.
하지만 이번엔 박사학위도 내려놓고 안락한 집도, 맛있고 건강에 좋은 식사도 내려놓고
사회 저소득층 블루칼라가 되어
노동의 현실을 고발했다.
웨이트리스 부터 하우스키퍼, 마트종업원, 요양원급식 보조까지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며
블루칼라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소득층은 왜?
중산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저소득층에 머물러 있는가?
그것의 이유는 무엇인가?
저임금의 문제인가? 아니면 무지한 저소득층의 안일함과 무능력의 문제인가? 라는
질문을 바버라는 집중 파헤치고 있고
왜 그들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가에 대한 현실과 고찰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다.
2000년 당시 대부분의 미국의 호텔, 레스토랑, 패스트푸드, 하우스키핑 등등의
시급 평균은 7불이었다.
일주일에 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한다면 210불을 벌어들이고 4주에
840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이 돈의 대부분은 집세에 쓰인다.
우리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선 집세가
자신의 수입의 30프로 정도가 가장 적적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가장 큰 문제는 초기 자금 즉 집을 랜트하기 위한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모텔이나 트레일러 등에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을 노동의 악순환의 이유 즉, 개미지옥이다.
싸구려 낡은 모텔이라 하더라도 보증금 없이 하루하루 돈을 내고 살아야 하기에
그 돈이 만만치 않다. 하루에 50불가량 내고 모텔에서 살다면
그들은 시간당 7불짜리 풀타임 잡 하나 가지고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투잡을 뛴다 해도 모텔비가 너무 턱없이 비싸 다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과 룸을 쉐어하며 산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은 여전히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일들은 불경기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2000년 미국의 경기가 호황일 때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집세 때문에 점심을 스낵 하나로 버티거나 굶기도 한다.
건강은 수시로 나빠지지만 애드빌과 같은 진통제 몇 알로 버텨야 한다.
왜냐하면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은 구경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턱없이 비싼 의료보험으로 인해 의료 혜택은 커녕 그 흔한 항생제조차 살 수가 없다.
그들은 치과에도 갈 수 없기에 치아 상태가 심하게 좋지 않아
이가 빠진 채로 썩은 채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이러한 악순환이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갈 수 없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들은 이런 저소득층의 약점을 움켜쥐고 그들의 의식을 세뇌한다.
'우리 회사는 너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너희는 전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고 일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런 게 아닌데도 말이다.
너무 비싼 집세 때문에 그들은 정크푸드를 먹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과도한 비만이 되어 여러 가지 성인병 등에 걸리게 되고
결국엔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거나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일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들의 삶을 돌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해볼 만한 힘이 없고
점차 삶에 지쳐가고 있다.
정부에서 내 거는 구휼책은 그들을 구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들은 여전히 돈을 벌지만 가난에 허덕이고 병들어 아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까지 훌륭한 의료보험 제도가 있어
미국과는 조금 나은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정부가 없애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고
실제로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다.
의료민영화가 된다면 우리 주위에 대다수 중산층 아래의 사람들은
병원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근 미래에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저소득층 사람들의 미국의 그들과 다르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소득에 의해 저소득층이 중산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그런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고 점점 더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사회는 점점 정치적, 경제적으로 양분화되어
저소득층은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금도 도처에 개미지옥에 빠져 삶의 끈을 놓는 청년들과 노인들 그리고 가정들이 있다.
얼마 전 세 모녀의 사건이 바로 그런 사건이다.
청년 실업률에 의해 취업을 못하는 두 딸
어머니의 임금으로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가
어머니마저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그나마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지면서
그들은 더 이상 삶을 이어갈 힘을 잃었고
결국에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다.
바버라는 2000년에 이 책을 쓰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버라 자신의 삶에서 그들을 돌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그들을 보호해야 할 정책들을 마련해야 하며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들도 그들의 삶을 내다보고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바버라는 이야기하고 있다.
긍정의 배신에 이어 읽은 노동의 배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의 삶이 언제든지 저소득층으로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현재 그런 위험한 경제,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잘못이 아닌 경우에도 말이다.
누구도 세모녀같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나라가 바뀌기 위해선 우리는 나라가 돌아가는 일(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큰 힘을 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