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팍(Tupac Amaru Shakur)
출생-1971년 6월 16일
사망-1996년 9월 13일
1996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2Pac이 어떻게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미국 서부와 동부 힙합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2Pac의 죽음과 서부, 동부의 전쟁은 미국 힙합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우선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두 인물을 먼저 말하자면 바로 2Pac과 Biggie다.

biggie(Notorious B.I.G)
동부 서부 불문하고, 다른 래퍼들은 주로 하드코어 랩이라고 하는
여성 비하발언이나 자신의 무용담 같은 것을 강렬한 가사로 표현 하는 랩을 많이 만들고는 한다.
물론 투팍역시 그랬다. 하지만
보통 랩퍼들과는 다른 투팍의 매력을 말해 보자면 위에 말한 강렬한 하드코어랩곡 뿐아니라
잔잔한 멜로디를 살려내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과 같은, 상당히 좋은 곡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투팍을 좋아하고 투팍의 랩을 따라하기 시작했다.일단 투팍은 그 시대 정말 대단했던 랩퍼 였다.비기가 퍼프대디 밑으로 들어가 무명생활을 하던 시절. 투팍이 우연히 비기의 공연을 보고 둘은 친해지게 된다.그때 투팍은 한창 잘나가던 랩퍼였기 때문에 투팍과 친했던 비기도 자연스럽게 유명세를 타게되고 퍼프대디가 배드보이 레코드사를 본격적으로 개업하면서 뉴욕을 휩쓸어버린 비기의 1집 raedy to die가 나오게 된다.그 후로 비기는 동부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고 투팍과 비기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고 접촉도 자주 하게 된다.
비기의 ready to die가 나온지 몇 달후..투팍이 비기의 작업실에 들르려 하다가 로비에서 괴한들에게 총알을 5발이나 맞는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투팍이 엠뷸런스에 실리는데 비기와 퍼피가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있는걸 보고 투팍은 이 사건의 배후가 비기나 퍼피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여기서 정확히 엠뷸런스에 실리는 도중인지, 아니면 그 후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이 사건 때문에 비기와 투팍의 사이가 틀어진건 확실하다.)
투팍은 정신이 돌아온 후에 범인으로 랩퍼 비기(Biggie)와 퍼프데디(Puff Daddy)를 지목했다. 그 둘이 자신을 유인하여 5발의 총을 쐈다는 증언을 한 것이다. 뭐 당연하게도 비기와 퍼프데디는 언론에서 2Pac의 말은 거짓이고 자신들은 오히려 2Pac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한다.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투팍과 이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앙숙이 되었다.

<비기와 퍼프데디가 언론에서 자신들은 사건과 상관없음을 이야기하는 모습>
그 후에 투팍은자신이 호텔방에 초대한 여자를 성희롱 했다는 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투팍은 다시 일어났고, 아픈 환자의 몸으로 재판을 받게된다. 하지만 워낙 투팍이 언론에서 미움을 받던터라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음에도 유죄판결이 나게된다. 투팍은 어쩔수없이 맥심감옥에 투옥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신문기사에 실린 성폴행 관련기사>
투팍이 감옥생활을 하던중 어느 레코드사에서 제의를 해온다. 자기가 보석금을 대신 내서 빼줄것이니 음반계약을 맺자는 제의였다. 이 제의를 해온 곳은 당시 미국 서부힙합 최고의 레이블이었던 데쓰로우(Death Row) 레코드였고, 이 데쓰로우의 사장은 슈그나잇(Suge Knight)이었다.

<슈그나잇(Suge Knight)>
약 1년뒤에 투팍의 레이블 death row의 사장인 슈그나잇이 140만 달러의 보석금으로 투팍을 감방에서 내 보내준다.
감옥에서 나온 투팍은 바로 비기의 디스곡인 Hit 'em up을 발표한다.
Hit 'em up - 2P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