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택시 운전을 업으로 삼고 있는 상구(박철민)네 가족
큰 딸 윤미(박희정)은 고교 졸업반이고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인해 취업을 생각한다.
대기업 진성반도체에 취업한 딸 윤미를 상구는 자랑스러워하고
온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20개월이 지난 후 윤미는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배움이 얕아 이 모든 원인이 무엇인지 상구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 때 진성 반도체에 이실장에 접근해
약간의 위로금을 받을 것과 윤미의 사표를 종용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위로금을 받고 딸의 사표를 내게 했다.
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회사 측은 이에 대한 책임을 회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에게 모두 돌린다.
결국 윤미는 상구의 택시에서 숨을 거두게 되고
이에 상구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은 회사에 있고
회사 때문에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 죽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고 증명할 것이라고...
노무사 난주와 노동 변호사와 그리고 윤미와 비슷하게 반도체 공정 작업을 통해
병을 얻어 죽었거나 고통받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들과 합심하여
진성반도체의 진실을 파헤치고 억울한 한을 법을 통해 풀려고 한다.
일부 승소 일부 패소 판정을 받은 재판
그 재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저예산 영화라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영화 자체의 퀄리티는 상당히 떨어진다.
게다가 박철민, 김규리씨의 연기 또한 그렇게 잘하는 연기가 아니기에 더욱 몰입감을 방해한다.
특히 박철민 씨의 기본적인 연기 컨셉은 항상 코믹 연기였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투리를 쓰는 박철민씨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연출과 영상미 역시 그렇게 세련되지 못했으며 영화적 재미 요소
(논픽션적인 주제라 하더라도 픽션인 영화이기에 극적인 요소와 전개는 필수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에 전달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전문적인 반도체 공정의 내용과 용어에 대한
불친절성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예를 들면 싯각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싯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아주 간단한 설명조차 영화에서 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변호인과 다른 길을 가게 만든 것도 이러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속에 있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원래 반도체 사업이라는 것이 공해적이고 인체에 위험한 산업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가전, 전자기기에는 모두 반도체가 들어가있다.
이러한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 중에
상당량의 화학약품들을 사용한다.
그런 과정에서 인체에 직접 노출되면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이 이 영화의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내용이다.
실제로 대학 때 반도체 공정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물론 반도체 공장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가내수공업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반도체는 거의 실험 수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실험조차도 실험자를 위험에 초래하게 만드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예를 들면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나머지를 씻어내리는
싯각 작업에서 강산인 황산을 사용했는데
(싯각: 원하는 반도체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불필요한 부분을 깎거나 씻어내는 작업)
꼭 방독면과 같은 프로텍터를 쓰고 작업을 해야했다.
피부에 튀는 것은 물론 공기중에 노출된 황산 가스를 흡입하게 되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때때로 피부에 튀어 피부가 검게 죽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우리가 실험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규모에서
만들어내는 반도체 공정은 생각 이상으로 안전한 장비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생산 효율성 때문에 이런 안전 프로토콜을 무시하여
유독한 화학약품에 노출돼 희귀병에 걸리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에 핵심이다.
하지만 진정한 핵심 주제는
기업과 개인의 관계라는 것에 있다.
기업은 개인이 모여 만들어지는 2차 집단이다.
그러므로 기업 이전에 개인이 있기에 개인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개인은 기업에 귀속된 하나의 부품일 뿐이다.
그래서 기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기업에 의해 병 혹은 장애를 얻게 되면
기업은 그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갈아끼우듯
개인을 버린다.
그 와중에 버려지는 개인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버림을 받게 되고
가정 또한 사회에 눈총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개인 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붕괴된다.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기업이 이제 개인을 버리고 있다.
기업은 기업의 이익이 되는 일이 개인에게 불합리하고 희생을 요구하게 하더라도
그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개인 또한 기업을 위해 그래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실장 같은 사람이야 말로 개인이지만
기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렇게 기업은 관리자를 뽑아 개인을 압박하고 개인이 기업에 미칠 수 있는 힘을 제어한다.
(노조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 것도 비슷한 논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돈은 가장 큰 힘이고 원동이지만 암적인 존재다.
가령 노동자가 기업에 대해 맞서기 위해서는 돈에 의해 휘둘리지 말아야 하지만
기업은 노동자의 약점인 돈을 가지고 힘을 행세한다.
결국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약점에 굴복해 기업이 원하는 대로
불합리한 현실을 억지로 인정하고 납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가 개인의 편을 들어주어야 하지만
국가마저 개인을 기업의 소모품으로 생각할 뿐이다.
국가마저 버린 개인과 그 가족은 더 이상 삶의 끈을 잡고 있을 힘이 없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일까?
먹고사는 문제 때문일까?
그 먹고사는 일 때문에 오히려 죽음을 당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바로 이 영화에 담겨있다.
유가족들이 조속히 위로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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